와인이 실패한 게 아니다. 우리가 실패했다.
이제는 알다시피, 어떤 양의 알코올도 해롭다고 주장하는 신금주 운동이 확산되면서 와인 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는 거의, 어쩌면 전혀 없지만, 와인과 증류주가 입은 타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이런 선전이 퍼지고 캔 칵테일이 붐을 이루는 사이, 우리는 와인을 문화와 장인정신의 상징에서 멀어지게 해 기피하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제 와인을 수백 년 역사를 지닌 세련된 예술 형식이 아니라 죄책감을 느끼며 즐기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와인은 분명 사치품이다. 언제나 그랬다. 부르고뉴와 보르도는 단순한 지역이 아니다. 정밀함과 인내, 자부심의 기준이다. 나파의 숲 바닥은 비유가 아니다. 미국 와인 양조의 탁월함을 떠받치는 실제 토대다. 이탈리아의 와인 생산자들은 계속해서 한계를 넓히며, 티냐넬로 같은 와인에 온 마음을 쏟아 위대함이 어떤 맛일 수 있는지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한편 우리는 편리함을 좇는다. 차갑고 달콤하고 톡 쏘는 캔 음료라면 무엇이든 마신다. 이를 “재미”와 “간편함”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와인보다 우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와인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우리의 집중력이다. 속도를 늦추고, 잔에 담긴 것을 살펴보고, 무엇이 그것을 특별하게 만드는지 왜 그런지 이해하려는 마음이 사라졌다.
샤토 마고와 할란 에스테이트 같은 초고급 와인 브랜드도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감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이들은 기준을 높게 세워 메이오미 20달러짜리 와인도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든다. 위대함은 맥락을 만들고, 맥락은 열망을 낳는다. 소박한 와인을 따르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장인정신과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같은 계보에 닿아 있다.
와인은 우리의 조급함에 맞춰 변해가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인내와 기술, 그리고 기호가 무르익으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일깨워주기 위해 존재한다. 젊은 세대가 자라 발효한 포도즙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게 되면 와인 업계를 둘러싼 우울함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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